라마 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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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2. 생애3. 여담

1. 개요 [편집]

태국의 전 국왕이다.
그의 아버지는 라마 5세의 아들인 송클라의 아들 마히돈 아둔야뎃이였다.

2. 생애 [편집]

그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파리, 로잔으로 옮겨다니다가 1927년 미국 매사추세츠로 갔다.

1928년 태국으로 돌아오지만, 1929년에는 그의 아버지인 마히돈 아둔야뎃이 37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1932년에는 시암에서 시암 혁명이 일어나 전제군주제를 폐지시키고 입헌군주제로 전환했으며, 국명을 시암에서 태국으로 변경했다. 1934년 라마 7세가 퇴위하면서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으나, 그는 스위스에서 유학중이였다. 의회는 아누왓짜뚜롱와 차오 프라야 욤마랏를 섭정으로 임명한다. 1938년 태국 왕으로서 태국을 처음으로 방문하고 쁠랙 피분송크람 총리를 만났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진 이후에도 추축국에 가담한 태국의 국가원수였으나 그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스위스에 체류했기에 본국에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전쟁 이후인 1945년 귀국한다. 1946년 6월 9일 취미로 총기를 수집했다가 왕궁의 침실에서 오발사고로 총탄이 이마에서 후두부로 관통 당해 사망했다. 정확한 사인은 아직까지도 불명이다.[1]

사후 라마 8세의 친동생인 푸미폰 아둔야뎃라마 9세로 즉위한다.

3. 여담 [편집]

500 바트 지폐의 뒷면에 나온다.
[1] 평소 총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던 라마 8세였기에 오발사고로 죽은 것이 말도 안된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으며 군부가 사고를 가장하여 암살한 게 아니냐는 설까지 나왔다. 물론 태국열대기후라서 덥고 습도가 높은 환경인 걸 감안하면, 총기 관리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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